담양군 월산면 용흥사 들어가는 길은 고즈넉하고 계곡이 일품이다.
한참 들판을 지나면 계곡을 막아 만든 호수는 물결에 반짝이고 햇살은 눈부시다.
일주문 앞 극락교 옆에 용흥사에 주석했던 스님들의 부도가 나란히 서있다. 모두 7기다.
청심 일옥 송백 황여 퇴암 황여 퇴암스님의 부도에 이름 없는 부도 2기다.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39호로 지정됐다.
이곳은 담양의 북쪽으로 장성과 가까우며 제18교구본사 백양사 말사다.
불교를 전했던 간다라 지역의 승려 마라난타 성사(聖師)께서 창건한 이래로
17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백제고찰인 용흥사는 원래의 이름은 용구사(龍龜寺)였다고 한다.
1693년 조선 숙종 19년에 궁녀 최복순이 용구사에서 기도하여 영조를 낳은 뒤 절 이름을 용흥사로 하고,
산 이름을 성인의 탄생을 꿈 꾼 몽성산(夢聖山)이라 하였다.
몽성산은 연화부수형의 신령한 명산이며 용흥사를 감싸고 있다.
대한제국 말에 의병과 왜병의 전투로 소실되어 작은 규모로 중건하였으나 이내 불타버렸고
1930년대에 백양사의 정신(定信) 스님께서 다시 중건하였으나 1950년에 발발한 6.25한국전쟁 때 전소하였다.
이후 법명이 알려지지 않은 스님께서 요사채 2동을 건립하여 근근이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서기 1970년에 호월스님께서 15평의 법당을 건립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37대 총무원장 대련진우 대화상께서 서기 2000년에 용흥사 주지 소임을 맡으면서
거의 폐사가 되어버린 용흥사를 복원하겠다는 큰 원력으로 대웅전, 지장전, 삼성각,
회승당, 화중당, 적묵당, 선불장, 용구루, 공양소를 건립했다.
이제 시절인연이 도래하여 주지 덕유스님과 김영록 전남 도지사와 이병노 담양군수의 지원으로
응송영희(應松暎熙)-백운지흥(白雲知興)으로 전해진 유물과 서적, 문서 등
문화유산을 보관·전시할 수 있는 전통한옥 초응서재(艸應書齋)를 2024년 초에 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른다.
용흥사는 대가람으로 많은 성보를 간직했었다. 석가모니불 좌상,
자씨미륵보살 입상, 제화갈라보살 입상, 아미타불 좌상 등 50여 점에 달했는데,
일제가 약탈하고 전쟁으로 소실됐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책사였던 일본인 혜경스님이 용흥사 성보를 다수 수탈해 갔다고 한다.
용흥사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재는 보물로 지정된 용흥사 동종(銅鐘).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보물 제1555호로 2008년 3월에 지정되었다. '담양 용흥사 순치원년명(順治元年銘) 동종'이라 부르기도 한다.
종의 몸체 표면에 ‘순치 원년(1644년)에 김용암(金龍岩)에 의해 조성됐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동종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용뉴다. 용뉴는 종의 맨 윗부분에 붙어 있는 용 모양의 고리를 말한다. 종을 종각에 걸어 놓기 위해 만든 고리다.
용뉴의 용은 고려 때까지는 한 마리였고 조선시대에는 주로 두 마리(용의 몸통은 하나인데 머리가 두 개)였다.
그런데 용흥사 동종은 용뉴의 용이 네마리이다. 매우 이례적인 용뉴 장식인데, 그 덕분에 용흥사 동종은 생동감 넘치고 역동적이다.
대웅전 앞 용구루 2층 찻집에서 내다보는 천왕문과 일주문 쪽 전망도 일품이다.
[주요 프로그램]
[용흥사] 내게 선물하는 반나절
[용흥사] 화엄경독송템플스테이
[용흥사] 마음을 밝히는[연꽃등 만들기 체험]
[용흥사] 참나를 찾는[선명상 체험]
[용흥사] 休, 스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