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金山寺)의 말사로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馬靈面) 동촌리(東村里) 마이산(馬耳山)에 있습니다. 1400여년의 전통을 지닌 백제고찰로서 호남 동부권의 중심도량입니다. 마이산 품안에 자리한 금당사는 마이산 도립공원내에서 가장 큰 사찰입니다. 남부 마이산 대부분이 금당사의 경내인데 약 42만 8천여 평 규모입니다.
삼국유사 제3권 흥법(興法)편(불교 전래의 유래 및 고승의 행적)에 의하면 금당사는 현재의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광대봉 기슭(현재 금당사 앞산)의 천연동굴에 650년(의자왕10) 고구려 보덕 화상의 제자인 무상(無上)스님이 금취(金趣)스님과 함께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보장왕이 중국의 도교에 심취하여 불교를 신봉하지 않자 보덕스님은 제자 11명을 이끌고 완산주로 내려와 백제지역에서 불법을 전하게 됩니다. 보덕스님의 제자 중 하나인 무상스님은 제자인 금취스님과 함께 진안 마이산으로 들어와 금당사의 옛터인 고금당(나옹굴)에 혈암사를 지었습니다. 당시에는 자연동굴을 법당으로 삼았기에 혈암사(穴巖寺) 또는 금동사(金洞寺)로 불렀다고 합니다.(신증동국여지승람)
고려말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혜근(惠勤, 1320∼1376)화상이 이곳에서 수행하며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 후 ‘나옹굴’로도 불리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승군의 사령부였으나 왜군들에 의해 금당사에 주둔했던 승군이 전멸당하고 사찰이 모두 불태워졌습니다.
1675년(숙종1)에 이르러서야 지금의 자리에 다시 재건하게 되는데 이 때부터 금당사로 고쳐 부르게 됩니다.
근래들어 금당사는 일제의 주권침탈에 맞서 싸우던 호남지역 항일운동의 진원지였습니다. 당시 주지 대완스님은 항일격문을 몸소 새겨 각지에 배포하고 최익현과 동맹록을 작성하는 등 호남 항일의병창의의 뜻을 펼쳤습니다. 금당사에서 시작된 일련의 항일운동은 위로는 동학농민운동을 잇고, 아래로는 일제식민지 하에서 맹렬히 전개된 소작쟁의로 이어졌습니다. 금당사는 일제에 의해 다시금 수난을 겪어 피폐해졌지만 1970년대 들어 옛 고찰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졌습니다.
1978년에는 명부전, 1987년에는 산신각, 1990년에는 극락전을 새로 지었고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 지장전, 삼성각, 대방(大房), 괘불각 등이 있습니다. 2010년에 이르러 벽산원행스님을 위시한 보산·보연·보륭·보화·보정·법은 등 그의 제자들이 금당사에 머물며 호남 동부권 조계종단의 중심도량으로서 사찰의 면모를 일신시켜나가고 있습니다.
연락처 | 063-432-4441 |
---|---|
주소 |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217 |
진행프로그램 | [금당사] 쉬어가자 소확행 완전 자율형 템플스테이(휴식형) [금당사] 2024 여행가는달 [행복두배 템플스테이]1박2일 |
대표 홈페이지 | https://kb2.templestay.com/index.asp?t_id=geumdangsa |